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마카스 마사히코 (문단 편집) === [[아마카스 사건]] === 1891년, 미야기현 [[센다이시]]에서 태어났다. 육군사관학교 재학 시절 제2구대에 속했는데 옆의 제1구대장이 다름아닌 [[도조 히데키]]였다. 당시 도조 히데키는 무척이나 엄격한 성품과 천황에 대한 절대적 충성심 때문에 일부 생도들로부터 존경심을 사고 있었는데 이 소문을 들은 아마카스는 자신의 구대장도 아닌 도조를 찾아가서 문안하곤 했다. 죽이 잘 맞은 둘은 경쟁적으로 천황에 대한 충성을 서약하면서 갖은 얘기를 나누었다. 1912년 [[일본육군사관학교]]를 24기로 졸업하고 [[기병]] 장교로 임관했으나, 낙마 사고를 겪은 후 [[헌병]] 병과로 전과했다. 코지마치 분대장이며 헌병 대위로 근무하던 1923년, [[관동 대지진]]의 소동을 틈타 가모시타 야스고로(鴨志田安五郎) 상병, 혼다 시게오(本多重雄) 상병, 헌병대 특고 모리 케이지로(森 慶次郎) 등과 함께 오스기 사카에와 이토 노에, 오스기의 조카 다치바나 소이치 등을 연행하여 목졸라 살해한 후 우물에 유기한 [[아마카스 사건]]을 일으켰다. 이후 부하들과 함께 체포되어 1923년 12월 8일 군법회의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치바 형무소에서 3년간 복역했다.[* 살해에 가담한 모리 케이지로 조장은 징역 3년, 카모시타와 혼다 상병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.] ||[[파일:220px-Masahiko_Amakasu,_September_1923.jpg]]|| || 일본군 시절의 아마카스 || 아마카스는 수감 초기에 자신의 우국충정(?)이 인정받지 못했다는 울분 때문인지 단식투쟁을 벌이며 감옥에서 죽겠다고 난동을 부렸으나 이 소식을 들은 도조 히데키가 사람들을 파견하여 설득하자 얌전해져서 조용히 수감생활을 하였다. 3년 복역 후 아마카스는 모범수로 선정되어 황실 경사가 온 것을 기념하여 대사면되었다. 가석방 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